지금 당장 뭐라도 해보자고요.
지금 당장 뭐라도 해보자고요.
  • 복합문화공간 마이(돼지문화체험관)
  • 승인 2018.12.08 17: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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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과 마음을 합해 관계와 관계를 이어 무장애 마을, 평등한 마을 한 번 만들어 봅시다.

얼마 전 뜻하지 않게 감투를 쓰게 됐다. 장애인가족과 학부모들로 구성된 장애인가족연대협동조합이란 단체가 진안에 생겼고 얼결에 이사장이란 직책을 맡게 됐다. 내 인품이 그런 막중한 직책을 감당할 만큼 훌륭해서가 절대 아니다. 우습게 들리겠지만 사다리타기로 조합의 이사장에 선출이 되었다. 사다리타기에 참여했던 다섯 명 중에 내가 제일 운이 나빴던 거다.

어찌되었든 자리가 사람을 만든다고 책임을 맡고 보니 여러 가지 일을 감당해야 했고 또 단체의 진로에 대해서도 구체적인 고민을 할 수밖에 없게 되었다. 사실 아직까지도 그게 참 어색하다. 나 스스로 장애인이긴 하지만 내 짐은 내가 지고 가야한다는 생각 때문에 장애인으로 살면서 겪게 되는 어려움들을 내 문제를 넘어 사회의 문제로 확장시키면서 살지는 못했었다.

교통사고로 장애를 입고 나서 오랜 시간 두문불출하며 살았다. 그러다 자의반 타의반으로 바깥세상에 나오게 되었고 그곳에서 스스로는 도무지 감당하기 힘든 자신의 문제를 안고 씨름하고 있는 이들을 만나게 되었다. 그들은 장애를 안고 살아가는 나와 같은 처지의 사람들이었고(대부분은 아이들이었다.) 그들의 가족, 부모들이었다. 그들은 지금까지 하루하루를 전쟁과 같이 살아왔고 어쩌면(천사 같은 누군가가 나타나서 도와주지 않는다면) 앞으로도 쭉 그렇게 살아가야 하리라. 전쟁과 같은 삶을 스스로 선택한 사람이 어디에 있을까. 그럼에도 세상 누구도 알아주지 않고 세상 누구도 눈여겨 봐주지 않는 전쟁을 매일 매순간 치러야 하는 이들의 심정을 나는 짐작도 못하겠다. 그들은 초인일까?

여기까지만 생각하면 그렇다. 그들 앞에 놓인 삶은 그렇듯 힘겹고 슬프고 화나고 참담하다. 멀리서 언뜻 바라보면 그렇다. 그들에게 희망이란 아침햇살에 가뭇없이 사라지는 새벽이슬 같기도 하고 존재하지 않지만 있다고 믿고 싶은 신기루와도 같은 것이리라. 그들은 정녕 초인일까?

그런데 아니었다. 가까이 다가가 가만히 살펴보니 그들도 여느 사람들과 같이 웃고 떠들고 슬퍼하고 화도 내는 평범함 속의 가녀린 존재였다. 여느 가족들과 같이 서로 보듬고 안아주다 어느 순간 투덕거리기도 하는 사랑가득한 평범한 가족이었다. 다만 하루의 어느 마디에서 느닷없이 아픔이 불쑥 솟아올라오면 그 아픔을 이겨내려고 서로 쓰다듬으면서 안간힘을 쓰는 중인 특별할 것 없는 우리의 이웃이자 형제였다.

장애는 특별한 게 아니고 조금 불편할 뿐이라고들 한다. 맞는 말이다. 그러나 거기엔 전제조건이 있다. 장애를 가진 사람들이 장애는 조금 불편할 뿐이라고 여길 수 있을 만큼 세상이 패인 곳 없이 채워져 있어야 한다. 몸이 불편한 사람, 마음이 불편한 사람, 정신이 불편한 이들이 스스로 감당할 수 있을 만큼만 불편해야 이 말은 타당한 말이 된다. 스스로 감당할 수 없는 불편과 고통을 매순간, 매일매일 느껴야 한다면 장애는 형벌이자 아픔일 뿐이다. 그런 세상이라면, 다행히 아직까지 장애가 없는 사람들도 조마조마한 마음으로 나와 내 가족 중 누구라도 언제 장애인이 될지 모르는 불안 속에서 살아가야 할 게다.

그러나 우리가 사는 세상은 그런 미개한 막무가내의 시대를 이미 넘어 언필칭 복지국가의 대열에 섰으니 얼마나 다행인가...... 라고 여유를 부려도 괜찮을까?

2019년도 복지관련 예산이 자그마치 161조원이라고 한다. 대통령은 포용적 복지국가를 슬로건으로 내걸고 복지국가의 로드맵을 완성하려고 한다. 포용적 복지국가란 불평등을 해소하고 경제성장 논리에 밀려 소외되었던 이들이 우리 사회의 동등한 구성원으로 자리를 잡아갈 수 있도록 하자는 노동과 복지, 사회경제 정책을 아우르는 개념이다. 이제 거기에 막대한 예산을 쏟아 부어 물리적인 불평등을 해소해 보겠다는 것이다.

이 대목에서 다시 곰곰이 생각을 하게 된다. 그렇게 해서 인민들의 원성이 자자한 다양한 불평등이 해소되면 사람들은 행복해 질까? 아니 질문을 다시 해야겠다. 이 세상에 만연한 정신과 물질의 불평등이 161조원으로, 돈으로 해결이 되기는 할까?

최저임금 인상, 비정규직의 지위향상, 기초연금 인상, 복지사각지대의 해소, 아동수당 도입, 국공립유치원 확대 등 눈엣가시 같은 불평등과 부족했던 복지정책들 중 우선순위로 개선이 이뤄지겠지만 국민들이 느끼는 행복의 지수를 올리기까지는 다른 그 무엇이 필요하지 않을까?

상생보다는 경쟁을 부추기는 교육정책이 바뀌고 경제적 풍요만을 우선시 하는 국가와 국민들의 의식이 바뀌고 나와 내 가족만을 챙기려는 사람들의 이기적인 생각이 바뀌어야 할 것이다. 답은 이렇듯 간단하다. 그러나 길이 너무 멀다. 그전에 우리 아이들은 자라서 어른이 돼 버릴 테고 힘없는 다수는 더 많은 불평등과 고통 속에 신음을 해야 할지도 모른다.

한 사람의 열 걸음 보다 열 사람의 한 걸음이 힘이 센 것은 틀림없다. 그러나 열사람의 한 걸음을 이끌어 내기 위해 먼저 생각한 한 사람이 반보쯤 앞서나가야 할 때도 있다. 그런 아방가르드한 시도를 우리는 혁명이라 부르기도 하고 그런 이들을 선구자라 부르기도 한다. 세상이 바뀌기를 기다리기 전에, 국가의 예산과 정책이 우리를 이끌기 전에 지금 당장 서로간의 신뢰와 애정, 그리고 협력을 바탕으로 우리 스스로 뭐라도 해 봐야 하지 않을까?

우리의 세상을 조금 더 나은 방향으로 이끌기 위한 소수의 실험과 도전은 성공을 향한 설렘과 실패에 대한 두려움을 동반하지만 가치 있는 일임엔 틀림없다.

우리가 사는 산촌의 작은 마을 진안에서 옹기종기 모여 좀 더 나은 세상을 만들기 위한 실험을 해보고자 한다. 장애를 가진 아이들과 그 가족들, 그리고 그들을 이웃이자 형제로 여기는 사람들이 모여 무장애마을, 평등한 마을을 만들어 보고 싶다. 그곳에서 사회적 농업으로 아이들과 주민들의 일자리를 만들어 내고 교육과 돌봄의 시스템을 갖추고 자본의 논리를 비웃으며 서로 돕고 사랑하며 평생 정착할 수 있는 보금자리를 만들어 보고 싶다. 그것은 돈이 아니라 마음과 마음으로 이뤄져야 하며 관계와 관계의 이음으로 이루어야 한다.

장애인가족연대라는 작은 단체의 이사장이란 감투를 쓰고 나서 함께 하는 이들과 요즘 머리를 맞대고 궁구하는 과제가 이것이다. 반걸음 앞서서 좋은 세상의 모델을 만들어 보는 것, 그러기위해 우리 뭐라도 해보자며 손을 맞잡는다. 재밌을 거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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